얼마 전까지 형형색색의 단풍과 나뭇잎들이 가을 정취를 물씬 풍기더니, 11월이 되자마자 며칠 사이에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이 거세지면서 거리마다 낙엽들이 을씨년스럽게 바람에 떠밀려 다니는 것을 볼 때, 이제는 정말 갑자기 겨울의 한복판으로 들어온 것 같습니다. 저는 11월이 될 때마다 몇 해 전 수행했던 중국동포 A씨 할아버지와 관련한 사건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A씨 할아버지는 중국에서 이혼 한 후 혼자지내고 있다가, 한국에 들어와 있던 동생과 같이 지내고 싶은 마음에 2010. 3.경 뒤늦게 한국에 입국하였습니다. 당시 할아버지는 65세의 나이로 부인과 오래전 이혼 한 상태였고, 자식들도 오래전 연락이 끊긴 상황이었기 때문에 A씨 할아버지에게 동생은 정을 나누는 유일한 혈육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국동포의 삶이 그러하듯 한국에서의 삶은 결코 녹록하지가 않았습니다. 특히 나이가 많은 탓에 처음 해보는 일에 대한 적응이 느리고,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할 수 없는 할아버지를 한국의 사업장에서는 잘 받아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몇 번의 취업실패 이후 막막한 생활을 이어가던 중에 서울강남에 있는 대형 고기집에서 숯불을 피우고, 석쇠 불판을 닦는 일을 어렵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숯불을 피우고, 석쇠 불판에 눌러 붙은 음식물을 떼어내고 설거지를 하는 것이 육체적으로 매우 고되었지만, 할아버지에게 이 직장은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기에, 다른 한국 직원들 보다 턱없이 낮은 임금에도 아무런 불평 없이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런데 식당의 주인은 물론 함께 일하는 동료 직원들조차도 할아버지가 한국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어눌한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면서, 휴식시간에도 함께 어울리지 않으려했습니다. 심지어는 숯불을 피우고 설거지를 하는 과정에서 옷이 더러워졌다는 이유로 휴식시간에 다른 동료들이 식당 내에서 편히 쉬는 것과 달리 할아버지는 식당 내부가 아닌 외부의 식자재 창고에서 따로 홀로 지내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해 11월 15일.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전날 사용한 석쇠 불판을 찬물에 씻어내야 하는 할아버지에게 추위는 남들보다 훨씬 더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설거지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들어온 식자재 창고는 냉방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추위를 견디다 못한 할아버지는 숯불 몇 개를 식자재 창고에 가지고 들어와 몸을 녹였는데, 잠시 눈을 붙인 이후 깨어나지 못하고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사건을 접한 동생은 업무 중에 발생한 사고로 당연히 산재보험 처리가 될 것으로 믿고, 보험금이 나오면 이 돈으로 장례를 치르고 중국에 있는 묘지에 형을 모실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업주는 산재보험이 처리될 경우 이후 사업주가 부담하게 되는 보험료가 오르게 된다는 이유로 산재보험에 처리에 매우 비협조적이었습니다. 특히 근로복지공단의 조사과정에서 사업주는 자신은 할아버지에게 휴식시간에 개인적으로 숯불을 사용하지 말 것을 지시하였는데, 할아버지가 이것을 어기고 숯불을 사용하다가 사망에 이른 것 이므로, 산재 대상이 아니라고 진술하였습니다. 근로복지공단 역시 이러한 사업주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여, 이 사건 사고가 근로시간이 아닌 휴식시간에 사업주의 지시를 어기고 숯불을 사용하다가 발생한 것이므로 산재대상이 아니라고 판정하였습니다.
얼마 뒤 중국동포신문에서 제가 쓴 칼럼을 보았다면서 동생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동생 분은 형의 억울한 죽음에 도저히 그냥 포기할 수 없다면서 그간의 사정 이야기를 말하였는데, 저로서도 할아버지의 사정이 너무 딱하여 어떻게 해서든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일단 사고 현장을 보고 싶어서 고기집을 가봤는데, 사고가 발생한 식자재 창고는 사고 이후 사업주가 철거를 하여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함께 일하였던 동료들 역시 매우 비협조적이었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의 산재관련 서류에도 사고 당시 자료가 거의 나와 있지 않아 사건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난감하였습니다.
결국 이러 저런 고민을 하다가 일단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보험 상의 유족급여신청 반려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그리고 법원을 통해 당시 사고와 관련하여 경찰서에 보관 중인 수사서류에 대한 문서송부촉탁을 하였는데, 다행히도 사고 당시 휴게장소로 쓰였던 창고의 모습이 사진으로 잘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이후 저는 위 사진을 토대로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업무상 필요에 의하여 휴게시설을 제공해야 할 경우 휴게시설로서 기능할 수 있는 적합한 상태를 유지해 주어야 할 것인데, 이 사건에서 사업주가 제공한 식자재 창고는 휴게시설로 사용할 수 있는 적합한 상태가 아니었고 특히 난방기능을 전혀 갖추지 못하여 추운 날씨에 망인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설명하면서, 따라서 설사 사업주가 망인에게 숯불을 사용하지 말 것을 지시하였다고 하더라도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아무런 장치를 제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와 같은 지시를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사업주의 책임이 배제될 수 없고, 오히려 이 사건 사고는 사업주가 제공한 시설의 결함에 의한 것이므로 산재사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재판부 역시 오랜 심리 끝에 저의 주장을 모두 인정하여 주었는데, 위 판결 이후 동생분이 사무실에 찾아와 고맙다며 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중국동포들과 관련한 사건을 진행하다보면, 근무환경이나 처우와 관련하여 동포들이 겪는 차별과 어려움에 마음이 아플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한국에 들어와 어려운 환경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한국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중국동포들을 차별 없이 대하는 기업문화가 뿌리내리길 올해가 가기 전 다시한번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