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동포신문=기고】대한민국 헌법 제32조 제3항은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 라고 선언하고 있다. 자신의 노동력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보장받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바로, 땀 흘려 노동한 대가로 지급받는 임금, 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단한 노동의 결과로 손에 쥐는 임금은 노동자와 그 가족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과 자부심인 것이다.
근로기준법에 정의된 "임금"이란, ‘사용자가 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임금, 봉급, 그 밖에 어떠한 명칭으로든지 지급하는 일체의 금품’을 말한다.(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5호) 매월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월급이 대표적인 임금의 모습이지만, 공사장에서 매일 받는 일당이나, 일정한 작업의 대가로 받는 수당 뿐 만 아니라, 노동자가 퇴직할 때 계속 근로 년 수 1년마다 30일분 이상의 평균임금으로 지급되는 “퇴직금”도 법으로 보장된 임금에 포함된다.
이러한 임금은 당사자 사이에 특별한 약정이 없는 한, 지급사유가 발생한 이후 14일 이내에 지급해야 함이 원칙이다. (근로기준법 제36조) 만약, 사업주가 지급사유가 발생한 이후 14일 이내에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해당 사업주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형사 처벌을 받게 된다. (근로기준법 제109조) 또한, 체불된 임금에 대해서는 14일 이후부터 연 20%에 해당하는 이자가 법률에 의해 보장된다. (근로기준법 제37조)
노동의 대가로 지급되는 임금은 본래 노동자들의 정당한 몫이다. 법률에서 14일이라는 지급기간을 마련한 이유는, ‘14일 동안은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하루빨리 지급하되, 늦어도 14일을 넘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만약, 퇴직으로 인하여 당장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이러한 규정은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퇴직금은 사용자가 은혜적, 시혜적으로 주는 금품이 아니라 노동자의 노동의 대가로 정당하게 지급받아야 하는 본래 노동자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4. 7. 29. 시행 예정인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은 이러한 기본 법리와 완벽하게 충돌한다. 위 개정 법률안 제13조 제3항은 이주노동자들의 퇴직금 중 일부를 적립한 “출국만기보험”의 지급시기를 ‘피보험자 등이 출국한 때로부터 14일 이내’라고 규정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이 법률의 의미에 대하여 “외국인 근로자들이 한국에서 취업을 마치고 출국한 이후 14일 이내에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지급받게 된다는 뜻이다”고 밝혔다. 요약하면, 이 법률안이 시행된 이후부터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하더라도, 출국하지 않는 한 퇴직금을 한 푼도 지급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금번 개정안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예상되고 있다.
현재 이주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법정 퇴직금은 계속 근로 년 수 1년 마다 30일분 이상의 평균임금액이다. 하지만 ‘출국만기보험’은 보통 법정 퇴직금의 70% 수준으로 지급되고 있다. 따라서 이주 노동자들은 법정 퇴직금에서 출국만기보험 수령액을 뺀 차액을 추가로 사업주에게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법률이 시행되면 남은 차액을 자국에 돌아간 다음에 청구할 수 있다. 국내에서 이주노동자들이 퇴직금을 청구해도 사업주들이 차일피일 미루는 상황인데 자국으로 돌아간 뒤에 차액을 지급 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는 제도적으로 법에 보장된 일부를 못 받게 하는 것이다.
또한, 이 개정안이 시행되면 이주노동자들이 퇴직하기 전까지 그들의 퇴직금이 전액 합법적으로 압류된다. 근로기준법은 강제저금을 금지하고 있어 급여와 퇴직금도 일정부분 포함된다. 그러나 개정안으로 인해 이주노동자들이 퇴직하기 전까지 그들의 퇴직금은 전액 합법적으로 압류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그 자체로 위헌 무효의 법률이다. 노동부는 이번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출국 이후 목돈을 지급받음으로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본국에 정착하는 자금으로 활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개정안이 시행됨에 따라 발생할 심각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하지 않고, 오히려 이주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설명하는 정부의 태도에 분명 옳지 못한 처사다. 이번 개정안의 진정한 속내는 불법체류자들을 내쫓기 위하여 노동자들의 생명줄인 퇴직금을 볼모로 잡겠다는 것이다. “근로조건의 보장은 인간으로의 존엄을 보장해야 한다”는 헌법 규정이 무척이나 공허하게 느껴진다.
▲조영관 (이주민지원센터 친구 사무국장, 변호사)
문의 : 02-848-6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