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이주민지원센터 ‘친구’에 소속되어 라파엘 클리닉에서 이주민 등을 상대로 한 법률상담에 참여하고 있는데, 상담 사례를 보면 임금체불이나 퇴직금 미지급의 사건들이 대부분을 이룬다는 사실이 참 안타깝다.
특히 퇴직금 같은 경우는 본인이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조차 확신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관련 법령의 내용을 잘 알지 못해서도 그렇지만 잘못된 정보를 접하거나 사업주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경우가 그러하다. 하지만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완전한 권리구제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얼마 전, 라파엘 클리닉을 찾은 A씨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방직회사에서 근무하던 외국인 노동자였다. 주로 무거운 짐을 나르는 작업을 하였는데 병환이 생겨 회사에서 퇴사한 후 수술까지 받게 되었고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미 지출한 치료비 외에도 앞으로도 추가적인 진료비용이 발생할 것이 예상되는 와중에 회사 측에서 퇴직금 지급을 거부하여 이를 해결하고자 상담을 요청한 것이다.
상담을 접수하고 퇴직금 지급 청구를 위해 성균관대학교 로스쿨 공익인권법학회 학회원들이 구체적인 사실관계의 파악을 위해 사업주와 접촉하였다. 회사 측의 입장은 다음과 같았다. A씨의 근무기간 중에 임금을 10만 원 가량 올린 적이 있었는데 이는 퇴직금을 미리 지급한다는 협의 아래 올린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협의를 퇴직금분할약정이라고 하며 구체적으로는 사용자가 매월 지급하는 월급 등에 퇴직금으로 일정한 금액을 미리 지급하기로 노동자와 약정하는 것을 말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이러한 퇴직금분할약정은 최종 퇴직 시 발생하는 퇴직금청구권을 근로자가 사전에 포기하는 것으로서 무효이고, 그 결과 퇴직금 분할 약정에 따라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퇴직금 명목의 금원을 지급하였다 하더라도 퇴직금 지급으로서의 효력이 없지만 그 동안 추가적으로 지급받은 퇴직금 명목에 해당하는 금원은 부당이득으로서 사용자에게 반환해야 한다.
즉, 회사의 주장과 판례에 따르면 결국 A씨는 퇴직금을 다시 받더라도 이전에 나눠서 받은 금액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해야하니 실질적인 구제는 되지 않는 셈이었다. 최근에 와서는 일정한 경우 미리 나눠 지급된 퇴직금 명목의 금원을 임금으로 보아 반환의무를 인정하지 않는 판례도 나오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A씨의 경우, 사건 담당 학회원들이 회사에 직접 찾아가 협의한 끝에 퇴직금에 상당하는 금액을 받아낼 수 있었다. 노동의 정당한 대가라는 측면에서 퇴직금은 임금과 마찬가지로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법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이러한 권리를 부당하게 빼앗기는 사례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아야 하며 또한 많은 사업주들의 인식과 윤리도 개선되길 바라면서 이 글의 끝을 맺는다.
▲이지영 이주민지원센터 친구 인권지원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