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태도는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소작쟁의이자, 한국 농민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암태도 소작쟁의가 일어난 현장이다. 쟁의가 발발한 1920년대는 일제의 토지조사사업과 산미 증식 계획으로 전국 농민 80%가 소작농으로 전락한 상황. 암태도 역시 소수 자작농을 제외한 대다수 농민이 소작농이었고, 토지는 대부분 지주 문재철 소유였다.
이 과정에서 목포경찰서가 일본 경찰을 암태도로 보내 소작인을 탄압하고, 마침내 소작인회 간부들을 구속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그러자 1924년 6월 암태도 소작인 400여 명이 목포경찰서와 법원 앞에서 구속자 석방 시위를 전개하고, 7월에는 다시 600여 명이 법원 앞에서 단식투쟁을 이어갔다. 전국에서 여론이 들끓고 노동?사회단체의 지지와 지원이 이어지자, 사태가 확산되는 것을 두려워한 일제는 구속자 석방과 중재에 나선다.
90여 년이 흐른 지금 암태도에서 식민지 지주와 일제에 대항한 자랑스러운 항쟁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쟁의를 이끈 지도자 서태석의 고향 오산마을 입구에 의사 서태석 선생 추모비와 가묘, 암태도 농민항쟁사적비가 서 있다.소작쟁의 후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한 서태석 선생은 1920년대 후반 공산당 관련 활동을 한 전력 때문에 오랫동안 금기의 대상이다가 2003년에야 뒤늦게 독립 유공자 훈장을 받았다. 암태도에 묻혀 있던 선생의 유해는 사후 65년이 지난 2008년 3월 4일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3묘역에 안장되었다. 한편 암태면 주민센터 옆에 6.74m 높이로 조성된 암태도 소작인항쟁기념탑에는 쟁의에 앞장선 농민 43인의 이름과 소설 《암태도》를 쓴 송기숙 작가의 글이 새겨졌다.
목포로 원정 시위를 떠나기 위해 도민 수백 명이 배를 탄 남강나루터도 의미 있는 장소다. 당시 암태도에서 목포까지는 뱃길로 한나절 거리였지만, 지금은 암태도 오도선착장에서 압해도 송공선착장까지 고작 25분 걸린다. 압해도에서 목포는 연륙교로 단숨에 갈 수 있다. 암태도와 압해도를 연결하는 새천년대교가 완공되는 2018년이면 암태도는 더 이상 섬이 아니다.
네 섬 중 가장 작은 팔금도에서는 고려 시대 유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을 볼 수 있다. 수화 김환기 화백의 고향 안좌도는 예술의 섬이라 불린다. 1910년 백두산 나무로 지었다는 생가와 마을의 벽화들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안좌도의 또 다른 볼거리는 천사의 다리다. 안좌도와 부속 섬인 박지도, 반월도를 연결하는 V자 모양 다리로, 총 길이 1462m에 이른다. 썰물 때면 갯벌 생물 관찰 체험도 할 수 있다.
〈여행 정보〉당일 여행코스
압해도 송공선착장→암태도 오도선착장→암태도 소작인항쟁기념탑→의사 서태석 선생 추모비, 암태도 농민항쟁사적비→팔금도 삼층석탑→안좌도 김환기 생가→안좌도 천사의 다리
대중교통 정보
[기차] 용산역-목포역, KTX 하루 16회 운행, 약 2시간 30분 소요.
[버스] 서울-목포,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24회 운행, 약 4시간 소요.
[여객선] 압해도 송공선착장-암태도 오도선착장, 1시간 간격 운항, 25분 소요.
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