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현 상황
현직 대통령 탄핵으로 정치적인 혼란은 물론 외교안보에 빨간 불이 커졌다. 탄핵심판은 끝났지만 지난 4개월 동안 대한민국이 받은 상처는 깊고 심각하다. 이러한 가운데 북한은 5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백주에 김정남을 독살하는 잔인성을 드러내는가 하면, 잇달아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위협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더욱이 북한은 제6차 핵실험 준비를 큰 규모로 진행하고 있으며 핵 폭발력의 규모는 역대 최대인 28만2천t에 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가 10일 밝혔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은 저마다 '스트롱맨 리더십'경쟁을 벌이듯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데 골몰하며 자국이기주의 외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한반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반발과 보복은 국가간 관계의 기본조차 외면하는 단계로까지 치닫고 있다. 사드포대 용지를 제공했다는 구실로 민간기업 롯데에 벌이는 불매운동과 행정 규제는 물론 한국행 관광상품 판매금지와 한류컨텐츠 규제 등으로까지 확산되었다. 지난해 말 한일통화스와프 만기연장을 둘러싸고 일본이 협상상대 부재 운운하며 보였던 행태는 모욕에 가까웠다. 대통령 탄핵으로 빚어진 리더십 부재가 국가에 대한 조롱과 무시로 이어졌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 사드배치 문제 관련 3가지 아쉬움
이미 기정사실화 된 사드배치는 확고한 한미군사동맹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번복할 수 없기에 강행되어야 하겠지만, 이 시점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중요한 국가안보 관련 사항은 국민과의 소통을 확대하고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여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국내 밀실협상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 1월 27일 아산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 사드배치 논의 시에는 찬성 74% 에서 급감하여 찬성46.3%, 반대 45.7%를 보였고, 3월 12일 한국사회연구소(KOSI)에 따르면 국민의 47.7%가 사드배치를 차기 정부로 넘겨야 한다고 여기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급변하는 격랑의 주변정세에 따라 시시각각 소통과 시의적절한 보고를 통해 적시적인 결정을 요하는 것이 외교안보문제인데, 박 전 대통령의 '불통철학'에 주눅이 들어 대통령 앞에서 과감하게 국가의 안위와 미래를 위하여 과감히 직언하는 참모진의 부재, 지시사항을 받아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업무 행태, 양신(良臣)이 아닌 맹신적인 충신(忠臣)만이 존재하는 구중궁궐(九重宮闕)식 의사결정은 체계적 의사결정시스템 부재라는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즉 사드배치 전 국회동의는 차치하더라도 과연 국가적 외교안보 대사에 관하여 내부적으로라도 참모들과 같이 사드배치로 얻는 이득은 무엇이고 무엇이 문제(후폭풍)인지에 대해서 치열하게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는지 묻고 싶다.
◇ 전략적 유연성과 당당한 강대국 균형외교
시진핑 국가 주석은 지난 1월 18일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 사무국 연설에서 "인류에게 드리워진 핵무기, '다모클레스의 칼'은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완전히 금지되고, 시간을 두고 철저히 파괴(제거)돼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으로는 핵무기의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북핵문제에 대해서는 '제한적 역할'에 머무는 중국의 이중적 태도를 우리는 과감히 지적해야 한다. 사드배치의 근본적인 배경은 북핵문제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여러 채널을 통하여 중국 측에 주지시켜야 한다. 특히 한국민이 인식하는 북핵 위협은 단순한 기우를 넘어서는 것으로,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라는 사실과 G-2 강대국으로서 진정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안정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견지해 달라고 중국 측에 강력히 설파해야 한다.
우리의 맹방인 미국에 대해서는, 진정으로 북핵 해결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북핵 및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방조하면서 북한 안보 위협을 빙자하여 한반도를 미국의 세계적인 MD 체계 구축 전초기지로 만들어서 북방삼각(중국-러시아-북한)에 대응하는 남방삼각을 고착시켜 동아시아 패권유지 내지는 장악력 제고 차원에서 추진하는 고도의 전략인, 이른바 중국의 봉쇄정책(containment policy) 을 염두에 두고 진행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냉정하게 주시하여야 한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국민여론을 무시한 밀실 추진" 이라는 비판 여론과 함께 외교 참사 중 하나로 기록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탄핵 진행 중에 국방부가 밀어붙여 추진한 것에 대해,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중국은 이를 한미일 MD 공동신호탄으로 여기고 있으며 이는 곧 중국의 사드배치로 인한 반한 감정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어버렸다. 한미 군 당국이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 가능성 검토를 발표하기 한 달 전, 국방부는 홈페이지에 '미국은 미사일 방어체계 MD를 운영하고 있고, 사드는 MD의 핵심이다', '사드는 미국 본토를 향해 날아오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요격할 목적으로 개발되었다'라고 게재되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드는 한반도 전장 환경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 한국 외교의 민낯
미국이 사드배치를 강력하게 제안했을 때 안보측면에서 필수불가결한 조치라 하더라도, 사전 중국과의 물밑 협의 내지는 의견교환 정도라도 있었는지 묻고 싶다. 아무리 중국이 내심 뿔이 났어도 노골적으로 우리나라에 이런 식으로 보복을 취하지는 못하도록 '미중관계 속에서 사드문제 해결방안'을 주도해야 했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왜냐하면 북한의 현실적인 위협에 대비하는 범위 내에서 한미군사동맹을 이미 중국은 현실적으로 인정(묵인)해왔기 때문이다.
2015년 9월 박 전 대통령이 중국의 2차 대전 승전 70주년 열병식에 참석하면서 한중 밀월은 최고조에 달했었다. 그러나 한중수교 25주년을 맞이한 올해 펼쳐지는 한중 관계는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험난함을 예고하고 있기에 우리는 다시 뒤돌아 봐야 한다. 대만과의 단교 시에도 중국과 수교 이틀 전 한국을 방문한 대만 외교부장 질의에 "전혀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답변했었다. 이는 항일독립운동 시절 김구 선생을 비롯한 우리 독립열사들을 지원한 국민당 측에 대한 신의와 의리를 헌신짝처럼 버린 꼴이 되어 지금도 중국인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번에도 이러한 일이 재연되었다. 무엇보다도 박근혜 전 대통령은 민간공공외교 차원에서 두 명의 중국 '태자당 자녀'(이선념 국가주석 딸 이소림 현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장과 등소평(鄧小平)의 셋째 딸로 개인 비서역할을 한 등용 중국 국제우호연락회 부회장)들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이들 두 명의 국가급 여성 지도자는 시진핑 주석과 같이 유년시절을 같이 보낸 사이로 항시 시진핑 주석과도 연락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중국 공공외교에 있어 숨어 있는 영향력 있는 인사다.
얼마 전 중국 방문 때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중국 친구에게 "왜 밀월관계이던 한중관계가 이렇게 되었는지?"라고 물어보았다. 그 친구는 "한국 총리가 사드 공식 발표 열흘 전 중국을 공식 방문했을 때는 물론이고, 등용 부회장이 공교롭게도 사드배치 공식 발표 사흘 전 청와대 비공식 예방을 한 바 있는데, 그 자리에서도 그렇게 중요한 문제에 대해 일체의 사전 언급이 없었다”며, 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일이라고 씁쓸한 어조로 ‘불강의기 부재일기(不講義氣不在一起; 의리를 지키지 않으면 함께 할 수 없다)’라고 언급했다.
한중간 상호 긴밀한 밀월관계가 무색하리만큼 무대책의 외교행태를 보이는 것이 현 한국외교의 민낯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소통과 협상을 해 나가는 것이 국가 신뢰관계 구축의 기본임을 몰랐다면 이는 더 큰 문제이다.
'有通이면 無痛이고, 無痛이면 有通이다.'라는 말은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 다가올 새로운 리더십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 심화는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지만, 북한의 안보위협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다.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북한의 돌발적인 행태는 이젠 도를 넘어 그 어느 때보다 한미군사동맹관계가 중요한 것이 현실이다. 이제 우리는 중미간 패권싸움의 한 가운데 놓여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지 않으려면 고도의 전략적인 지혜와 안목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외치와 대북정책 관련된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치열하게 토론하되 일단 결정되면 한 목소리로 일관되게 추진되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냉정하게 현실을 보고 국익을 위해 다양한 소통과 협의를 통하여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벚꽃 대선'에서 승리하는 지도자는 좌초한 '대한민국호'를 구할 수 있는, 과거에 대한 복기를 할 줄 아는 인물이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前 주중 국방무관 / 現 (사)한중안보평화포럼 대표 이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