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 동북아의 안보환경은 한국의 북방외교를 시작으로 급격하게 변화했다. 한국, 미국,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남방3각과 북한, 중국, 러시아의 북방3각 사이의 냉전의 장벽을 허무는 것이었다. 그러나 4반세기가 지난 지금 사드 배치로 인해 남북관계를 비롯한 동북아 환경이 과거의 냉전상태로 다시 회귀하는 듯 한 인상을 받는다.
주목해야 할 점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 안보환경으로 크게 3가지를 들 수 있다. 우선, 과거에는 국제적으로 미국 유일 패권의 단극체제(Unipolar)였다면, 2008년 이후에는 중국이 G2국가로 부상하면서 양극체제(Bipolar)가 형성되었다. 다음으로, 한국의 경제적, 군사적 위상도 변모했다. 1980년대 한국의 GDP 순위는 전세계 20위권에도 들지 못했지만 2016년 세계 10위 국가로 올라섰으며, 군사력 또한 세계 11위를 기록하여 25위의 북한을 가볍게 제쳤다. 마지막으로 한국과 중국의 수교 이후 급격한 교류협력으로 특히 경제분야에서 서로에 대한 결속력이 커져왔다. 현재 한국의 대중 수출 의존도는 25.1%로 미국의 두 배에 달하고 실제적인 경제의존도는 더 심화되었다.
◇ '各自圖生'의 밑그림
북한은 ‘통미봉남(通美封南)’으로 미국과 연결고리를 유지하면서 한국을 배척하고자 한다. 북한은 핵위력 강화 및 장거리 미사일 사거리 제고로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이끌어내는 것이 지상목표다. 중국은 ‘통미배남(通美排南)’으로 한국을 배제(무시)하고 미국과 직접 소통하여 자신의 G2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본은 ‘통미제중(通美制中)’으로 미국을 통해 중국을 견제함으로써 동아시아에서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고자 한다. 미국은 ‘통남제중(通南制中)’으로 한국을 통해서 중국을 견제하여 중국에 대한 패권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속셈이다.
◇ 무심코 내뱉은 대국의 意圖
이들의 전략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은 과연 ‘대한민국’을 ‘필수불가결한 외교 파트너’로 생각하는지 의문이 든다는 사실이다. 미국과 중국측의 발언에서 어렵지 않게 속내를 찾아볼 수 있다. 최근 미국 국무부 대변인실이 뒤늦게 수습하였지만, 미국은 일본을 ‘가장 중요한 동맹’이라고 칭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중요한 파트너’라고 언급하며 은연중에 일본을 더 중시하는 속내를 드러냈다. 사드배치로 한국에 대한 전방위적인 제재조치를 취하고 있는 중국은 한술 더 떠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북한, 미국이 참여하는 3자 회담’을 제안했다. 중국 왕이(王毅)외교부장이 제시한 한국을 배제한 한반도 평화 구축안은 중국이 한국의 역할을 무시 내지는 안보대화의 상대로 어떻게 인정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 구태의연한 진보와 보수의 개념
이달 중순 경 진보진영의 유력한 대선 후보가 "굳건한 한미군사동맹은 필요하지만 미국에 No라고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발언에 대해 진위여부와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보수진영의 중진의원은 "미국이 아닌 중국에게 No할 수 있어야 한다"며 미국과의 한미군사동맹 관계를 훼손할 수 있는 여지를 두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한국에서 소위 말하는 보수와 진보는 각각 미국과 중국을 외교 중심축으로 안보전략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 보수는 미국과의 동맹 관계 강화를 통해 북한을 봉쇄하고자 하며, 진보는 중국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화함으로써 북한에게 개혁개방을 주입시키려 한다.
◇ '장미대선'에 거는 기대
국내정세가 혼잡한 시점에 사드 배치라는 예상치 못했던 핫 이슈에 부딪혀 위기를 겪고 있는 현 시점에서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국익'이다. 낡은 프레임에만 빠져있는 진보와 보수 차원을 뛰어넘어 '실리'를 추구하는 외교 정책을 취해야 한다. 즉 장사꾼 트럼프와는 딜(deal)을, 정치꾼 시진핑과는 협상(negotiation)을 적절히 구사해야 한다. 장미는 아름다운 꽃과 향기가 있지만 '날카로운 가시'가 있어 사람들이 쉽게 꺾을 수 없다. 우리와 협력하여 서로 상생 공존하지 않고 우리를 단순히 자신만의 이익추구를 위하여 취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가시를 세울 줄 알아야 한다. 불확실한 안보 상황에서 유연하고도 균형감 있게 국가의 이익을 구현할 수 있는 ‘실익외교’ 정책을 주장하는 대선후보가 과연 누구인지 주의깊게 들여다 볼 일이다.
前 주중국방무관 / 現 사)한중안보평화포럼 대표 이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