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동포신문=연재】중국동포를 조선족이라며 혐오하는 한국인은 진정 이들의 존제를 알고 있는지 내국인은 조선족의 영화를 보고 전체를 흉악하고 혐오라며 “판단하기 전” 우리들의 같은 민족이며 태어난 곳과 고향이 다르다는 이유며 우리가 제주도에서 태어난 사람을 섬사람이라고 편견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중국으로 이주] 1869년에 한반도 북부에 대규모의 기근이 발생하여 굶주림을 피해 두만강을 건너 중국동북으로 유입하게 된 계기다, 1885년 청나라와 만주가 이민금지령을 철폐하면서 1885~1910년까지 조선인이 중국으로 26만명 이상이 이주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독립 이후] 1945년 일제패망하자 216만 명중 약 절반 100만 여명 즉 31년 만주 개척으로 파견된 조선인들은 한반도로의 귀국이 가능하였지만 1869년부터 가난을 피해 이주한 조선족들과 강제징용 등 끌려간 조선인은 자본이 없어 돌아가지 못하자 중국에 머무는 것을 선택하였으며, 이들은 중국 내 소수민족으로 규정받고, “조선족”(朝鮮族)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소수민족] 1945년 해방이후 벌어진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에서 중국에 남아 있던 “조선의용대”는 국민당을 배격하고, 토지개혁을 지지하는 공산당을 도와서 전쟁에 적극 참여하여 조선인들은 새로운 중국 건설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서, 중국 공민으로서 상당한 대우를 받는 소수민족이 되었다.
[언제부터 한국으로] 1990년대 초반 불법체류자들이 늘어나면서 사증을 발급받아야 한국 입국이 가능하게 되었고, 합법입국 통로가 좁아지면서 새로운 입국방식으로 등장한 것이 조선족 여성이 한국남성과 위장 혼인과 위명으로 많은 입국이 되었다. 일반 조선족은 조선 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에 이주하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한국으로 이주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가 1997년 한중수교부터 F4 재외동포비자로 대한민국으로 건너와, 많은 조선족은 전철타기가 용이한 가리봉동 시장을 중심으로 쪽방촌을 얻어 살면서 3D 직종에 종사하였다.
1999년 제정된 재외동포출입국과 법적지위에 관한법률은 재외동포가 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것을 금지하자 불법체류자가 늘어나며 많은 불체자를 양산했다. 조선족노동자들의 집단행동과 시민사회단체의 주장에 따라 최근에는 방문취업을 5년간 복수로 허용하고, 재일동포 비자는 3년의 체류기간을 주고 있다, 2010년에는 육아도우미, 가사도우미, 간병인, 복지시설보조원 등의 서비스직 종사자에 대해 영주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도입하였다.
[조선족 흉악범죄] 대한민국사람도 흉악범죄도 많다 제주도에서 여자인 고유정 사건만 봐도 한 펜션에서 5월 25일 전 부인이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내국인은 사건 사고가 많아 귀담아 듣지 않지만, 조선족 사건이라면 혐오로 생각하여 귀담게 된다.
대한민국에서 조선족들의 흉악 범죄는 매우 많다. 여성을 살해한 오원춘 사건, 원곡동 편의점 여직원 폭행 등 여러 강력범죄가 일어나고 있다.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국내 거주 외국인 중 살인, 강도, 강간, 절도, 폭력 등 5대 강력범죄를 저지른 외국인 중 절반이 넘는 59.3%가 중국인(조선족)이다. 또한 2010년부터 2016년까지 폭력을 포함한 각종 범죄에 입건된 외국인이 8만5608명인이며, 이 중절반이 3만9097명이 중국동포로 밝혀졌다.
[한국 생활] 대한민국 안에서 국민과 동등한 법적 지위를 보장받도록 법률로 지정되여 계속 체류허가를 받을 려면 기능사 자격증을 따야 자격변경이 가능하여 많은 중국동포들은 상당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어 웬만한 한국인보다 생활이 나아져 살기 편리한 서울 근교 수도권 지역으로 이주하여 살기 괜찮은 곳에 상당 수 들이 집을 구매하고 있다.
(역사자료 일부출처 =위키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