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어서 계속> 오나가 성기의 팔을 잡으며 물었다.
“오나 저번에 편의점 POS시스템을 속여서 빵과 우유를 가져 왔을 때 내가 분명히 말했지?”
성기는 걸음을 멈춘 채 말했다.
목적지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10분이다.
맥퀸은 최고급 벤츠 시리즈를 15대나 가지고 있었다. 세단에는 맥퀸이 혼자 타고, 다른 벤츠 SUV 7인승 두 대의 차량에 용병들이 타고 있었다. 살인병기인 그들을 적으로 두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들에게서 나는 피 냄새 때문에 맥퀸은 선두에 홀로 나섰다.
맥퀸은 운전석에 걸려 있는 스마트폰으로 오나의 메시지를 다시 확인해 봤다.
첫사랑은 반드시 깨진다. 그래서 나의 첫사랑은 당신이 해 줘요. 우리 주인님은 두 번째 사랑으로 영원히 갈 거니까.
맥퀸은 주인님이라는 글자를 천천히 읽어 보았다.
“주…인…님….”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만든 피조물이 남성기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이 노여움을 어떻게 해야 할까!”
“첫사랑……!”
맥퀸에게도 가슴 아픈 첫사랑이 있었다. 그녀는 지금도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 산악자전거를 타다 사고를 당해 척수외상을 입어 영원히 걷지 못하게 되었다.
“기분이 점점 엉망이 되어 가네. 오늘은 누군가 희생물로 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그의 검은색 벤츠는 피 냄새를 찾아 질주하고 있었다.
성기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지자 추위에 움츠리고 있던 행인들이 그들을 쳐다봤다. 그러나 성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주 선 오나를 향해 큰소리로 말했다.
“도둑질해서 더러운 목숨을 이어가는 것보다 그냥 굶어 죽는 게 낫다고 했잖아 오나?”
“알았어요, 주인님!”
오나는 성기가 화를 내자 눈치를 살피며 일부러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날씨가 춥고 늦은 밤이어서인지 행인들은 흘깃 쳐다보고 그냥 지나갔다.
오나가 슬그머니 성기의 손을 다시 잡으려 했으나 성기는 싸늘하게 손을 거두어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
오나는 당황했다. 성기가 이런 싸늘한 반응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항상 따뜻했던 생명체가 얼음처럼 차가워지자 오나는 무척 놀랐다.
“오나.”
“예, 주인님?”
“우리 그들과 싸우지 말고 도망치자. 넌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잖아.”
“그럼 영원히 도망쳐야 하나요?”
“그래, 그들이 지쳐서 포기할 때까지 계속해서 도망치면 되는 거야.”
“주인님, 정말 미안해요. 이미 늦었어요.”
“……!!”
“맥퀸이 5분 후에 우리 앞에 나타날 거예요.”
흠칫하는 성기에게 너무 미안했던 오나가 그의 품에 와락 안기었다.
성기는 신음 소리를 내듯이 말을 뱉어 냈다.
“5분 후에 맥퀸이…….”
오나는 성기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조용히 있었다. 아무리 프로그래밍을 해봐도 영원히 도망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다시는 쫓아 올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었지만 그 계획을 주인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는 당연히 도망치자고 할 테니까.
“주인님은 나의 두 번째 사랑이에요.”
성기는 자신을 꽉 안고 있는 이 차가운 생명체가 던지는 사랑이라는 단어에 문득 놀라며 물었다.
“왜 내가 두 번째야?”
“첫사랑은 반드시 깨진다. 그래서 나의 첫사랑은 맥퀸이고요. 우리 주인님은 두 번째 사랑으로 영원히 갈 거니까요.”
둘은 슬픈 영화의 포스터처럼 서로의 눈을 마주보고 서 있었다. 어렵게 남자 주인공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첫사랑을 죽이겠다고?”
오나가 그렇다고 막 대답하려는 순간 탱글탱글한 여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좀도둑 아줌마네. 크크!”
둘은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교복 치마가 잘 어울리는 여학생이 한 손에 스마트폰을 한 손에 종이커피 잔을 들고 서 있었다.
오나는 여학생을 바로 알아보고 미소를 지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미소였다.
오나가 어린 여자아이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성기는 알고 있었다. 이런 위기일발의 상황에서도 천진난만하게 좋아하는 오나를 잠시 지켜보기로 하고 성기는 슬며시 뒤로 물러나 오나와 거리를 두었다.
“어, 넌 편의점 알바 김은지!”
“아줌마 잘 지냈어요?”
“그래 반갑다.”
“아줌마는 도둑질도 잘하고, 밤에 연애도 잘하는군요.”
생각 없이 내뱉는 학생의 말에 오나는 맘이 상했다. 오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순식간에 은지를 스캔했다. 그런 오나를 성기는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
“왜요. 내 몸에 뭐가 묻었어요?”
은지가 기분 나쁜 듯이 물었다.
“그래, 너 임신했구나. 축하해, 1개월이야!”
은지가 말도 안 된다며 소리쳤다.
“시발 누가 임신해요. 1개월이라고요!?”
화가 머리끝까지 뻗진 은지가 커피 잔을 바닥에 내동냉이 치면서 소리쳤다.
“다시 씨부렁거려 봐요. 이 도둑년 아줌마야!”
한 대 때릴 기세로 소리치는 여학생 덕분에 행인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그러자 성기가 재빨리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정말 미안해 학생. 이 아줌마에게 좀 충격적인 일이 있어서 말이 잘못 나왔어. 내가 대신 사과할게.”
성기가 쩔쩔매며 여학생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
오나는 성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자 여학생이 악을 쓰듯이 소리쳤다.
“아저씨가 뭔데 대신 사과해요. 아저씨는 찌그러져 있어요. 명예훼손죄로 112에 당장 신고 할 거야!”
여학생이 스마트폰을 막 터치하려고 했다.
“너, 한 달 전에 상경이 집에서 섹스 했잖아? 너의 페이스북에 다 올려놨잖아. 그리고 약국에서 임신진단검사 키트도 샀잖아.”
여학생은 무너지는 표정으로 오나를 쳐다봤다.
행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여학생에게 쏠렸다. 성기도 말없이 여학생을 바라봤다.
손가락이 얼어붙었는지 여학생은 스마트폰에 터치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싸가지는 없지만 뻔뻔하게 거짓말을 할 정도로 나쁜 아이는 아니었다.
“…….”
얼굴이 빨개지는 여학생의 표정을 보며 행인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임신 1개월 엄마의 변화는…….”
오나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여학생은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헛구역질을 했다. 이건 나이든 어른들이 보기에 임신 초기에 나타나는 입덧이었다.
“우웩~~”
“쯧쯧~, 확실히 입덧이 맞네…….”
여기저기서 혀를 차는 소리를 들은 여학생은 자신이 정말 임신한 것처럼 느꼈다. 그리고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어졌다. 빨리 이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후다닥 행인들과 부딪히면서 도망을 쳤다.
“이봐 학생!!”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앞만 보고 달렸다.
‘임신이라니 고등학교 2학년인 내가! 날 이 지경으로 만든 김상경 이 개새끼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내가 임신했다고 까발린 저 도둑년도 가만두지 않을 거야.’
입술을 깨물며 은지는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중년의 여자가 은지의 스마트폰을 오나에게 건네주었다.
“자. 이건 여학생 만나면 줘요.”
“예, 알았습니다.”
“에휴! 밤길이지만 색시를 보니 내 눈이 다 시원해지네.”
“예? 왜 절 보니 눈이 시원해지세요?”
“내 눈이 시원해질 정도로 정말 예뻐서 그래. 색시!”
오나는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였다. 오나의 행동에 행인들은 기분 좋게 한바탕 웃었다.
검정색 벤츠가 허연 연기를 내뿜으며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도착 2분 전이었다. 휘발유 냄새가 찬 밤공기 속으로 퍼져 나갔다.
“……!!”
순간 오나에게 위험 신호가 켜졌다.
“벤츠 세단 S600 시리즈에서 연소되는 휘발유 냄새에요.”
오나는 상기된 목소리로 성기에게 위험을 알렸다.
“그럼 몇 미터 전까지 온 거야?”
둘이 불안해하자 행인들도 갑자기 긴장을 했다.
“대략 1,500미터 정도 언덕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어요.”
“그래, 그럼 어서 다른 곳으로 도망가자고.”
“왜요. 여기 있으면 지형지물도 있고 우리가 유리할 것 같은데요.”
성기는 주변에 서 있는 행인들을 한 번 둘러봤다.
“여긴 사람들이 많이 있잖아. 그러니까 어서 다른 곳으로 가자.”
“아!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우리만 죽자고요?”
갑자기 엉뚱한 대답을 하는 오나를 보고 행인들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나 성기는 급했다. 차 소리가 귀에 들려왔기 때문이다. 성기가 오나의 손목을 낚아채 달리기 시작했다. 행인들은 영문을 모른 채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오나는 전투를 치루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지형지물을 탐색해 그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들이 가는 곳은 골목이 넓고 커다란 집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었다. 재개발로 인해 모두 빈집이었다. 그들이 임신한 여학생과 만났던 곳과 유사한 곳이었다. 둘은 손을 잡고 달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오나의 상의 주머니에서 스마트폰 벨이 울렸다. 요즘 유행하는 걸 그룹의 노래가 컬러링 되어 있었다. 아까 은지가 놓고 간 폰이었다.
오나는 폰을 꺼내 액정화면을 보며 잠시 주춤했다. 그런 오나의 표정을 보며 성기가 물었다.
“누구야? 그 여학생 아빠야, 엄마야?”
오나는 말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누군데?”
“데미스 맥퀸!”
“뭐라고, 미스터 맥퀸이 어떻게 아무 연관도 없는 여학생의 폰으로 연락을 할 수 있지?”
성기에게는 정말 겁나는 연결이었다.
“미국국가안전보장국(NSA)의 위성 통제권을 맥퀸이 가지고 있으니 얼마든지 가능한 통화에요.”
“받아야지?”
숨을 헐떡이며 성기가 말했다.
<1-4 끝>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