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아교정을 시작하기 전 얼굴 사진을 찍습니다. 교정이 끝나면 똑같은 사진을 다시 찍습니다. 치료결과를 기록, 비교하기 위함입니다. 교정의사의 의무사항이라 본능적으로 행하던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눈에 들어오는 것도 가지런해진 치아, 입 주위의 매무새의 변화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환자 전체가 보이더군요. 화려해진 화장, 멋을 낸 머리스타일, 그리고 빛을 발하는 미소. 그리고 그 분들의 옷차림, 전신의 변화까지 종종 이해하기 힘든 환자분들이 있습니다. 생긴 것도 멀쩡하고, 직업도 있고, 생활수준도 나쁘지 않은데, 입안의 상태가 엉망인 분들입니다. 혹시 이 분은 은둔형 외톨이가 아닐까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이 듭니다. 대화를 나눠보면 제가 틀렸습니다. 그리고, 저를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고 이가 가지런해지면, 언제 그랬나 싶게 깨끗하게 입안을 관리합니다. 말수도 많아지고, 웃음도 늘어갑니다. 무슨 변화가 있는 걸까요?
저는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으로 이해합니다. 그 분의 입안은 언제부터인가, 어떤 이유로, 스스로에 의해 방치된 채 내버려지게 된 겁니다. 비뚤어진 치아로 인해 입을 벌리는 횟수가 줄어듭니다. 양치질은 비교적 잘 한 것 같은데 여기저기 충치는 늘어납니다. 피도 납니다. 입에서 냄새도 나는 것 같습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대화도 떨어져서 하고, 잘 웃지도 않고, 입을 안 벌리는 게 상책입니다. 당연히 심리적으로도 위축됩니다. 그리하여 “웃지 않는 미녀(홍소미 박사의 저서에서 인용), 화난 얼굴의 신사”가 되어 갑니다.
다행히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저를 찾아온 것입니다. 제가 그 분들에게 드리는 가장 큰 도움은, 환경을 개선해 드리는 것입니다. 깨진 유리창을 갈아 끼워줘 스스로 자신의 입안을 망치는, 하여 정신까지 망치는 일을 중지하고, 자신의 손으로 입안을 청결히 할 수 있으며, 웃을 때 대화할 때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얘기하기 않아도 교정이 끝나는 날 그 분들은 마치 졸업식 사진을 찍는 것처럼, 신입사원 면접을 보는 날처럼 멋지게 차려 입고 오십니다. 그게 그 분이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닙니다. 이제 그 분은 평상시에도, 일상생활에서도 그렇게 멋쟁이로 지내시는 겁니다. 그분들의 표정은 또 얼마나 밝은지 아십니까?
저도 단순히 긴 시간의, 쉽지 않은 교정치료가 끝나서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치료 시작시의 사진과 비교해 보면, 얼굴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내면에서 우러나는 자신감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제가 바로 그 분이 자존감을 회복하는데 일정 정도 도움을 드린 것 같아 너무 뿌듯합니다. 저는 그 분이 환하게 웃을 때 너무 행복합니다.
교정장치를 치아에서 떼어드리는 날, 전 우스개 소리로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교정의 역사가 오래된 서양에서는 교정치료가 끝나는 날은 가까운 사람들과 파티를 합니다. 당신도 오늘 파티를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백이면 백 다 기분 좋은 미소를 짓습니다.
실은 정작 이 날 파티를 할 사람은 치료를 한 접니다. 제 치료를 받은 분이 저에게 기분 좋게 아주 환하게 웃어주셨거든요. 화난 사람 같은, 두려움에 떠는 사람 같은 처음의 표정이 아니라, 자신감 있고 당당하며 따뜻한 미소로 말입니다. 그 분들은 이미 치료 기간 동안 수많은 파티를 하셨을 겁니다. 마음과 외모, 스스로를 가꾸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고, 자신에게 투자하는 파티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