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동포신문=오피니언】농촌에서 반평생 넘도록 일해 온 00씨(61세)가 새로운 삶의 돛을 한국이란 땅에 내리기는 올해 2월 말이었다. 마을사람들이 한국에서 돈을 벌어다가 시내에 아파트를 사놓고 사는 것이 부러워 어느 때든 한국에 갔으면 했는데 마침 기회가 생겼다. 북방의 날씨는 2월이 지나도 추웠지만 한국에 간다는 그것으로 해서 00씨의 가슴에는 벌써 따스한 봄이 찾아들어 가슴이 훈훈해나기만 했다.
(인제 돈 많이 벌어서 시내에 집을 사고 아들도 장가보내고. 장기 환자인 남편도 큰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잘 치료시키고…) 그녀의 꿈은 저 멀리 하늘가로 자꾸만 퍼져갔다. 2월 25일, 그녀는 드디어 낯설은 한국 땅에 돛을 내렸다. 행장을 푼지 사흘만에 지인의 알선으로 남양주라는 곳에 있는 한 세탁소 일을 하기로 했다.
처음에 사장님을 만났을 때 그녀는 속이 좀 섬찍했다. 나이에 비해 겉늙은 그녀를 사장님이 도리질할가봐서였다. 그녀의 아래우를 잠간 훑어보던 사장님이 그녀의 순진한 마음까지 뚫고봐서인지 인차 이렇게 말했다. “내일부터 일하세요. 월급은 백만 원이구요.” 그녀의 가슴이 활 열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날듯이 기뻤다. 비록 월급이 식당이나 보모일에 비하면 보잘것없이 적지만 그만큼 일이 쉽지 않는가!
3월 1일, 그녀는 아침 일찌기 출근하였다. 그녀가 맡은 일은 세탁해서나온 옷들을 싸이즈에 따라 잘 포개어 놓으면 되는 일이였다. (세상에 이같이 쉽게 돈 버는 일도 있단 말인가!) 평생 농촌에서 체력로동으로 잔뼈를 굳혀온 그녀는 늘 촌마을에서 일솜씨 잽싸고 신체도 든든해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체력이라 이같이 온 하루 앉아서 손만 움직이는 일을 너무도 쉽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상상과는 다를 줄이야! 우선 사장님이 그녀의 일솜씨가 늦다고 잔소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네가 말하다 입이 아프면 말겠지. 하는 식으로 못들은 척하고 손을 애써 부지런히 놀렸다. 이미 다녀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사장님이 욕하거나 잔소리할 때면 참아야 한다는 것이였다. 비위를 잘못 거슬리면 짤리니 말이다. 연속 며칠 귀가 아프게 들려오는 사장님의 잔소리 속에서 그녀는 일을 해나갔다.
나이 많으니 필경은 다른 사람보다 일손이 늦으니 그녀는 사장보기 미안한 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남보다 한 시간 먼저 출근했고 퇴근 때도 남보다 한 시간 늦게 집에 돌아왔다. 평생 농촌에서 키워온 진실함과 순진함으로 그 사장을 감동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것도 소용없었다. 사장은 조금도 알아주지 않았다.
앉아서 하는 일이라고 쉽게 생각했던 일이 농촌일보다 더 힘들고 힘들었다. 온 하루 옷을 쉴 새 없이 포개고 나니 저녁이면 어깨가 시큼시큼 아파났고 허리도 아파서 꼼짝하기 싫었다. 심지어 화장실로 두주먹 쥐고 막 달아갔다 와야 했다. 이런 육체적 고통이 심한 것은 둘째 치고 매일마다 밥 먹듯 하는 사장의 잔소리가 더 힘들었다. 그래도 처음보다 솜씨가 많이 빨라졌는데도 이상하게 사장님은 잔소리가 그칠 새 없다. 어떤 날에는 그녀의 앞에 딱 마주앉아 딱지켜보면서 잔소리했다. 그래도 그녀는 죄진 사람처럼 아무 대꾸도 없이 손 부지런히 놀리고 또 놀렸다.
어느 한 번은 사장이 너무 잔소리하는 바람에 저도 몰래 눈물이 나왔다. 닦으면 또 흘러나오고…(아니, 아니, 내가 왜 이래? 젊은사람 앞에서?) 그녀는 애써 눈물을 참았다. 그러나 눈물은 그녀의 마음을 몰라라 하는 식으로 샘처럼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아. 내가 왜 이렇게 돈 벌어야 하는가? ) 그시각 그녀는 한국에 온 것이 후회되기도 했다. 농촌에서 땅을 가꾸면서 일해도 얼마든지 배불리 먹고 살 수있는건데…. 그러면서 이전에 다른 사람들이 번 돈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밤이면 보석처럼 쫙 널린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저도 몰래 남편생각이 떠올랐다. 그동안 남편은 밥이나 제대로 잡숫고 있는지? 지금쯤 남편은 뭘 하고 있을가? 어찌 보면 병 많은 남편을 두고 한국에 온 것이 후회 되였다.
그날 그녀의 눈물은 헛되지 않았다. 그 후부터 사장님은 더는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한국에 온 바엔 돈 더 벌려는 욕심으로 그녀는 다른 일자리를 찾으려고 세탁소에서 나오려 하자 사장님이 발칵 화를 냈다. “아줌마. 나가셔도 괜찮은데 그전에 다른 사람 대신 찾아주던지 아니면 새로 사람을 받아야 해요. 그러니 다른 사람이 오기 전까지는 해주세요.”
그래서 그녀는 계속 일하면서 아는 사람을 통해 여기저기 수소문했지만 월급이 적다고 안하겠다고 한다. 또 간혹 해보겠다고 나서는 아줌마도 있었지만 하루 일해보곤 이튿날 다시 오지 않는다. 그래도 매일마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오늘에는 나갈 수 있을 거다는 마음으로 기다림 속에서 힘든 날들을 보냈다.
봄에는 그래도 바깥의 냉기로 세탁소 안은 있을만했는데 여름이 가까와오자 화가처럼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금방 세탁해낸 옷들의 뜨거운 화기가 그대로 집안에 퍼지면서 콧구멍 안이 다 말라들 정도로 더워났다. 어느 한번 어쩌다 휴식일이 생겨 시장에 갔는데 공교롭게도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야단을 친다.
“와, 한국에 오더니 이뻐졌네. 얼굴색이 말쑥해졌어!”
아니, 이게 사실이란 말인가? 그날 그녀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한참이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한국에 금방 왔을 때보다 많이 수척해졌고 이마엔 주름이 더 생겼다. 얼굴색이 확실히 전보다 하얗다. 그러나 그건 출근 날이면 진종일 해볕 쪼임을 못해서 얼굴이 해쓱해진 것이리라.
해와 달이 바뀌면서 벌써 넉 달이 지났다. 그때 남편이 몹시 편치 않다는 소식을 보내왔다. 그래서 그녀는 사장님의 만류도 뿌리치고 막무가내로 세탁소를 나와야 했다. 아픔도 겪어보고 눈물도 흘려보고 월급을 손에 쥘 때는 웃어도 보던 넉 달간의 희로애락!
이전에 그녀는 한국에 가기 전에는 한국은 돈 버는 노다지판으로 생각했는데 체험해보니 사실 돈이란 쉽게 오는 것이 아니였다. 짧고도 긴 넉 달 동안에 그녀는 돈 번건 별로 없어도 돈보다도 더 값진걸 벌어왔다. 그것은 바로 희로애락으로 반죽된 새로운 인생수업공부였다.
옥필
이 글은 ‘조선족대모임’이 중국동포의 한국생활 수기모음집을 한권의 책으로 묶어 출간한 ‘빵상과 쭝국애 혀네언니’에 수록된 수기입니다. (조선족대모임 : http://cafe.daum.net/yanji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