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동포신문=오피니언】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나는 지금까지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문화수양도 높은 우리네 아리랑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살아왔다. 어린 시절 비록 한강이 동해로 흘러가는지 서해로 흘러가는지 딱히 모르는 나이였지만 파란들 남쪽에서 산들 봄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오면 막연한 동경과 그리움을 안고 서울이 있다고 하는 머나먼 남쪽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어느덧 불어온 개혁개방의 훈풍에 나의 한민족 사랑도 한껏 기지개를 펴게 되었다. 방송국에 근무하던 그 시절 내가 편집한 주말 특집프로엔 수많은 우리민족가요들이 전파를 타고 끊임없이 내 고향의 하늘에 울려 퍼지곤 했다. 피는 못 속인다는 말과 같이 불러도 좋고 들어도 좋은 신나는 우리가락에 나의 마음은 마냥 하늘의 꽃구름처럼 둥실 떠있었다.
허나 어느 날 야심차게 추진했던 부동산 투자에 쫄딱 망해 빈털터리가 된 나는 빚 때문에 그 좋은 직업도 버리고 산업연수생의 신분으로 한국에 나오게 되었다. 1996년 3월 28일 11시 30분경에 김포공항에 내렸다. 그날은 내가 그동안 살면서 처음으로 고국의 땅을 밟아보는 획기적인 순간이었다. 비록 낯선 환경에 어리벙벙하기도 했지만 오매불망 그리던 조상의 나라에 왔다는 즐거운 마음에 설레는 가슴을 걷잡을 수 없었다.
우리 연수생들을 태운 버스는 50분가량 길을 달려 용인에 있는 연수원에 도착했다. 그날 저녁 베트남 인도네시아 중국 세 나라 연수생들이 대회장에서 즐거운 오락잔치를 펼쳤다. 다음날 아침 7시에 집합, 아침체조를 마치고 8시부터 신체검사를 하였다. 내 차례가 되어 오른팔에 피를 뽑은 후 약솜으로 눌렀으나 조금 피가 난다고 담당 간호사가 하던 일을 제쳐놓고 건너와 나의 팔을 잡아주는 고마운 행실이 사뭇 놀랐고 감격했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한마디 던지고 말았다.
“우리 민족의 피는 모두 깨끗합니다.”
“그럼요 맞습니다.”
살짝 웃으며 답하는 여간호사의 부드럽고 상냥한 말씨는 가물에 단비처럼 내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었다 허나 한 순간에 불쾌한 일이 터지고 말았다. 나의 앞 사람이 투시경 사진을 찍을 때 옆에서 누군가 개를 달아맨 것 같다고 웃기는 바람에 사진이 잘못되어 다시 찍어야 했다. 담당의사도 짜증을 부렸다. 허나 조금 지나 담당의사분이 오히려 그 연수생에게 방금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게 아닌가? 또 한 번 놀랐다. 중국이라면 의사가 한바탕 난리가 났을 텐데 사과란 어림도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헌데 반대로 의사 쪽에서 사과를 하니 난감했던 심정이 풀리고 감사한 마음이 가슴에 꽉 차 올랐다.
그 연수생도 민망한 나머지 “방금 안 됐습니다.” 라고 사과하니 40대로 보이는 의사선생님도 “괜찮습니다. 방금 앞서나간 분들이 웃겨놓았기 때문입니다.” 라며 미소를 던진다. 이 모든 것을 조용히 지켜보면서 나는 고국의 친절하고 살가운 봉사정신에 한 민족의 훈훈한 정을 가슴으로 느꼈다.
삼일간의 연수교육을 마친 나는 회사에서 파견한 버스에 앉아 경기도 양주군 회천읍 회정리에 있는 소화기 분말약재 공장으로 갔다. 회사숙소에 짐을 부리운 우리는 먼저 앞으로 일할 공장을 둘러보았다. 마침 그날은 일요일이라 공장은 쉬고 할일 없는 나는 마을에 나가 공중전화기에 백 원짜리 동전을 집어넣고 집에 전화를 했다. 연수교육을 받는 동안 모든 전화통화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 입국한 후 처음으로 집에 전화를 하게 된 것이다.
집에 전화를 하니 아내가 울먹이며 전화를 받는데 세수도 못하고 애타게 전화 곁을 지켰다고 한다. 마침 소학교 4학년에 다니는 아들 녀석도 집에 있었다. “아버지 무사함까?” 하는 아들놈의 챙챙한 목소리에 그만 목이 꺽 메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실은 내 새끼를 위하여 모든 것을 팽개치고 돈 벌러 한국에 나온 것이 아니였던가! 아버지 하고 부르며 달려오는 아들놈의 해맑은 얼굴이 눈앞에 선히 떠오르며 가슴이 한없이 설렌다.
장인어른은 내가 돌아갈 때까지 죽지 않고 기다리겠다고 한다. 그리고 나를 떠나보낸 후 일가친척들은 집에 돌아가지 않고 우리 집에 모여앉아 이야기 나누면서 일이라곤 못해본 내가 어떻게 한국에서 힘든 일을 하겠냐며 다들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말들을 들으면서 가슴이 저려온다.
이튿날부터 우리는 본격적으로 로동자 생활을 시작했다. 36년 만에 해보는 고된 로동이였다. 공장안은 온통 먼지로 뒤덮였고 혹독한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찌르는 처절한 전투장이였다. 기계소음과 함께 이것저것 시키는 일을 하느라 어지름증이 막 났다. 중국에서 언제 이런 일을 해 보았던가? 실로 상상도 못했던 생사판가리였다. 가끔 허리가 쏘아나고 숨이 막혀오고 등짝에 땀이 배여 찜찜하고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덜컥 겁이 났다. 이러다가 내가 여기서 쓰러져 일어못나는 건 아닐까? 허나 어찌하랴 가정을 위하여 자식을 위하여 내일을 위하여 참고 견지하기로 마음먹었다.
죽기야 하겠냐는 각오로 이악하게 일에 달라붙었다. 하루 12시간의 노동을 마치고 나면 온 몸이 녹초가 되곤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손이 아파 주먹을 쥘 수가 없었다. 밥을 먹다가 저도 몰래 손에서 수저가 미끄러져 나갈 때도 있었다.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수저를 주을 때면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 시절엔 지금처럼 손에 핸드폰이 없었으니 편지를 써야 했다. 편지를 받고 즐거워할 아들놈의 모습이 눈앞에 삼삼하여 빨리 편지를 쓰고픈 마음은 간절하건만 손이아파 필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하도 마음이 급한 나머지 이빨로 손등을 물어뜯어 마취시키면서 눈물의 편지를 쓰기도 했다.
허나 더욱 힘든 것은 거지나라에서 돈 벌러 나왔다고 거지 취급을 받는 억울함이었다. 일락천장이었다. 방송국 편집기자가 바다를 넘어오니 루추하고 보잘 것 없는 인간이 된 것이다. 우선 영어공부를 못한 것이 죄라면 죄였다. 벤지와 망치를 빼고는 모든 공구 이름을 영어로 사용하기에 몽키가 뭔지 쁘라유가 뭔지 니빠가 뭔지 알 수가 없어 허둥대노라면 등 뒤에서 비아냥과 야유가 들려왔다. 우리 공장 김 이사란 분은 참으로 대단했다. 지게차를 닦을 때 옆에 서서 물을 뿌려! 유리를 닦아! 걸레를 짜! 발밑을 닦아! 하고 시시콜콜 잔소리를 할 때면 혼란스러워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럴 때면 정말로 망치로 뒤통수를 쳐서 농수로 속에 집어넣고 싶은 충동이 굴뚝처럼 일어섰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했던가? 정말로 비인간적인 대우에 화병이 날것만 같았다. 너무도 힘들고 열 받아 술을 벌컥 벌컥 마시고 회사건물 옥상에 올라갔다. 한걸음만 내 디디면 모든 근심걱정과 분노가 살아질 수도 있었다. 죽음이 이처럼 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북경이 있는 서북쪽을 향해 “조국이여 강대하라!”(祖国呀 强大吧!)하고 목메어 부르짖기도 했다. 마음이 좀 진정되는 같았다.
옥상에서 내려오니 마침 한일 국가 대표팀간의 축구경기가 있었다. 축구라면 발톱까지 빠진 나였기에 축구경기에 넋을 잃고 말았다. 붉은 티셔츠는 우리네 사랑이였다. 꼴이 터지면 가슴에 환희가 솟구쳐 저도 모르게 와와 소리가 나갔다.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것만 같았다. 온몸에 뜨거운 피가 끓었다. 일본한테 당한 수난의 치욕을 생각하면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헌데 우리와 동시에 건넌방에서도 박수가 터지고 환호성이 울려왔다. 한 꼴 한 꼴 들어갈 때마다 똑 같이 열찬 박수가 터졌다. 실은 벽하나 사이지만 우리네 마음의 장벽 때문에 서로 외면하고 대립했던 것이다. 불현듯 우리는 한민족 한겨레 한 핏줄이라는 것을 가슴으로 느꼈다. 감동과 감격 민족의 자긍심으로 가슴이 뭉클했다. 억눌린 가슴에도 봄은 오는가? 얼어붙었던 고까운 마음이 녹아내리고 한민족 애틋한 사랑이 가슴에 부풀어 올랐다.
그 뒤로 나는 주동적으로 한국 사람들에게 친절히 다가가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와의 문화 차이를 좁혀가기에 노력했다. 서로 나누고 소통하니 많은 오해가 풀리고 우리는 분명히 한 핏줄 한 통속 한문화 한정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목과 대립의 빗장을 풀고 서로 친절히 밀착하면서 사이좋게 일하니 갈수록 살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유수 같은 세월 속에 고국에 몸 담군지도 어느덧 열다섯 해가 넘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난 지금 사람 사는 맛에 흠뻑 젖어있다. 어데서든 사람 사는 건 똑같다는 걸 이제 비로소 알 것 같다.
오기수
이 글은 ‘조선족대모임’이 중국동포의 한국생활 수기모음집을 한권의 책으로 묶어 출간한 ‘빵상과 쭝국애 혀네언니’에 수록된 수기입니다. (조선족대모임 : http://cafe.daum.net/yanji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