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이라면 브랜드 옷 아니면 보석 달린 가락지 같은 것들을 손꼽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값비싼 선물이라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색바래지면서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지고 만다. 보석보다 황금보다 소중한 내 생애 최고 선물 1호는 바로 내 사랑하는 자식이다. 딸애의 출생을 7년이나 기다렸던 만큼 양육 역시 아무리 힘들어도 하냥 즐거웠다.
한국 서울 공연예술고등학교서 공부하고 싶다는 딸애의 소원 때문에 한국행을 결심했지만 아무 준비 없이 무작정 온 것은 아니다. 쉽지 않은 이국 생활, 한국에서도 부자집이 아니면 보낼 엄두를 못 낸다는 서울시 유일한 예술 특목고로 지정된 학교에서 딸애는 스스로 하고 싶었던 공부에 전념을 다 하고 있어서 내 행복도 더블이다.
며칠 전 개학식 한지 3개월 만에 첫 활주로 콘서트 초대메세지를 받고 학교에 다녀온 적 있다. 한국에서 딸애의 첫 무대라 들뜬 마음에 너무 일찍 서두른 바람에 내가 도착한 콘서트장은 아직 한 사람도 없었다. 아트홀관중석을 혼자 앉아 지키느라니 지난 옛 추억들이 드라마 장면처럼 눈앞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딸애가 엄마 엄마하고 말할 때부터 동요를 배워주면서 천부적 음악 감각을 발견하고 전문가들을 찾아 자문도 하고 그때로부터 딸애의 진로를 위해 애한테 공부뿐만 아니라 피아노, 장고, 가야금, 동요, 방송DJ 등 과외공부를 시키면서 차분하게 기초를 닦아주었다.
그때 당시 너도나도 한국 가는 바람이 한창일 때라 누구보다도 돈 많이 벌어 부자 되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식농사라는 점을 확신한 나는 돈벌이를 위한 한국행은 포기했다. 그래서 그동안 남들처럼 목돈은 벌어놓지 못했지만 애랑 함께 동화와 수필을 읽으면서 나 역시 수필쟁이로 여러 번 수상하는 영예도 받으리만큼 대학에서도 배우지 못했던 지식을 배워냈다. 딸애의 사춘기를 대비해 배워둔 심리학 대화법 덕분에 심리 상담 전문가로 인정받으리만큼 동네에서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딸애가 피아노 최고수준 평가시험 볼 때 나도 HSK 10급 자격증을 따냈다. 딸과의 경쟁 아닌 나의 어제와 오늘의 경쟁을 선호했기에 나이 들어 공부에 열성을 부리는 엄마를 바라보면서 딸애는 부담 없이 공부와 예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게 되였다. “현명한 부모, 훌륭한 자식” 양성반의 단기학습을 마치고 나는 호랑이 같은 여자로부터 엄마 같은 친절한 선생님으로 성장되였다.
맑게 개인날 호수의 고요함 같던 나의 생활에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작년 7월 딸애가 재외동포재단의 초청으로 글로벌네트워크 청소년, 대학생초청단의 일원으로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고 그것이 딸애에게 한국에 가서 공부하겠다는 결심을 키워준 것 같았다. 그래서 중앙음악학원피아노 고전음악연주반에 입학한 후 며칠도 안 돼 중국어로 역사, 지리, 한어문 수업을 못 받겠다는 핑계를 대고 학교를 중퇴, 10월 초 한국에 또 입국해 서울 공연예고 입시시험을 보았다. 운명의 조화라 할가 무연고동포에 대한 한국정부의 배려로 나도 방문취업 전산추첨에 걸려 H-2비자를 발급받았다. 뭣보다도 가까운 곳에서 계속 딸애를 보살필 수 있어 좋았다.
나는 외국 국적이지만 학부모모임에 자주 참가한다. 모임이 끝나면 개별적으로 담임선생님을 만나 딸애의 학교생활과 관련된 부분들을 문의할 수 있다. 뉴스를 보면서 학교폭력과 왕따가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였는데 학교 규장제도가 엄격하고 딸애의 행위가 바르기에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말을 들으면 걱정이 사라진다. 학교생활 빨리도 적응해가는 딸애에 대한 걱정은 줄었지만 열악한 생활환경 때문에 딸애에 대한 미안함은 점점 커져만 간다.
서울에서 해결하기 가장 어려운 문제가 집 문제라는 점에 대해 많은 중국동포들이 공감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원룸은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0만, 관리비 1인당 3만 원, 전기세 1만 3천 원, 가스비 6만 5천 원, 인터넷, 전화, 티비 3종 세트로 3만 5천 원, 핸드폰요금 8만 원 합해 총 55만 원의 지출을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딸애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 늘 빠듯하다.
설거지 주방보조로 하루 열두세 시간 일하고 밤늦게 집에 돌아오면 온몸 206개 관절이 성한데 없이 쑤시고 온갖 통증이 몰려든다. 수면시간은 고작 네 시간, 딸애 학교 시간 맞춰서 일어나 간식 준비, 식사 준비 마치고 딸애가 학교 가고 나면 나도 출근 준비로 바삐 돌아친다. 시간과 몸으로 받는 일당이라서 집에서 소모한 시간을 몸으로 때워야 한다. 매주 한 번밖에 없는 휴일도 쉬지 못하고 일해야 한다. 내가 고생하는 것은 괜찮지만 딸애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파 난다.
둘이 누우면 돌아누울 자리마저도 부족한 원룸은 돌아서면 싱크대, 또 돌아서면 화장실, 또 돌아서면 바닥에 깔린 스펀지…. 딸애는 노래연습을 화장실에서 하는데 화장실만을 고집하는 딸애에게 그만한 이유가 있다. 창문과 동떨어진 막힌 공간이라서 울림이 적기에 이웃들에 대한 피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공간은 빌라 밖 주차장인데 밤 11시 넘어서 주차장으로 향하는 차량이 뜸해진 후 줄넘기와 훌라후프 돌리기 운동을 각각 천 번씩 마치고 퇴근하는 나랑 함께 들어와서 씻고 나면 12시 반에 잠을 잔다. 중간 단원시험 시 한국어 성적 빼고는 괜찮은 점수로 41명 중 9등을 한 딸애, 열심히 노력하는 것으로 엄마의 고생에 보답해드릴 거라고 말해서 감동으로 눈굽이 젖어들 때가 있었다.
이렇게 노력한 덕분으로 딸애는 첫여름더위가 시작되던 어느 날 건대 입구서 롯데백화점 후원으로 열린 스타발굴오디션에서 탑3에 진입해 받은 상품권으로 엄마한테 브랜드가방을 선물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 가방, 딸애가 처음으로 사준 값비싼 선물이라서 기분이 매우 좋았지만 맛 나는 먹거리 내 입에 먼저 넣어주는 딸애의 마음이 가방보다 더 값진 선물이 아닌가 싶다. 어엿하게 잘 자라서 제가 하고 싶어하는 예술을 즐기고 있는 모습 자체가 나한테는 가장 큰 효도이다. 갑자기 아트홀의 불이 꺼지면서 나의 행복한 추억여행은 드디어 막을 내렸다.
이어서 시작된 콘서트, 딸애의 안무개편으로 7명 소녀댄스가 콘서트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다. 무대 위를 즐기는 딸애를 바라보면서 나는 이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그렇다. 서울 공연예술고는 딸애에게 유학생 신분으로 한국에 체류할 자격을 선물한 학교이다. 지금도 딸애한테는 서울공연예고입학통지서가최고 선물일 것이다.
딸과 엄마. 어찌 보면 가장 믿기에 기쁨도 슬픔도 나눌 수 있고 눈빛하나 손가락 터치하나로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닌가! 딸애의 성장을 리더하는 엄마. 딸애가 스스로 이런 엄마의 존재를 자기의 최고 선물로 인정하는 날까지 이 엄마 역할은 계속 될 것이다.
주홍단
이 글은 ‘조선족대모임’이 중국동포의 한국생활 수기모음집을 한권의 책으로 묶어 출간한 ‘빵상과 쭝국애 혀네언니’에 수록된 수기입니다. (조선족대모임 : http://cafe.daum.net/yanji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