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사적 122호)은 태종 5년(1405) 경복궁 동쪽에 세워, 창경궁과 함께 동궐이라 불렸다. 왕이 거주하며 정사를 이끌던 곳을 법궁, 화재나 변고가 있을 때 머물며 정사를 보던 곳을 이궁이라 한다. 경복궁이 조선의 법궁이고, 창덕궁과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은 이궁이다. 하지만 태종부터 이후의 왕들은 창덕궁에 더 자주, 오래 머물렀다. 경복궁은 주요 건물들이 좌우대칭으로 반듯한데, 창덕궁은 산자락과 주변 지형에 따라 공간을 자연스럽게 배치했다. 사람과 건축물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친근하면서도 아름다운 궁궐이 만들어진 것이다.
정면 5칸에 2층으로 된 돈화문(보물 383호)을 지나면서 궐내에 들어선다. 먼저 돌로 된 금천교(보물 1762호)를 건너는데, 궁궐로 들어갈 때 흐르는 물에 악한 마음을 씻어 맑게 한다는 의미다. 임진왜란이나 화재 등으로 창덕궁의 많은 건물들이 소실되었으나, 금천교는 처음 모습 그대로 600년을 이어오고 있다.
창덕궁의 중심은 인정전(국보 225호)이다. 인정전으로 들어가는 인정문(보물 813호)은 연산군, 효종, 현종, 숙종, 영조 등이 즉위식을 올린 곳이다. 문을 통과하면 넓은 마당이 펼쳐지고, 그 위에 우뚝 선 인정전이 보인다. 밖에서 보기에는 2층이지만 내부는 한 층으로 뚫린 구조다. 왕의 혼례나 외국 사신을 맞이할 때, 신하들의 하례를 받을 때 등 나라의 공식적인 행사를 치르던 공간이다.
왕이 업무를 보던 곳은 인정전 동쪽에 지은 선정전(보물 814호)이다. 청기와를 올린 것이 특징인데, 수입 안료를 사용해 청기와를 만드느라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왕실 도서관 규장각, 용마루를 얹지 않은 대조전(보물 816호), 희정당(보물 815호)에서 일을 마친 왕이 곧장 침전으로 건너갈 수 있게 만든 복도각, 왕세자가 공부하던 곳이자 1910년대부터 내의원으로 쓰인 성정각, 마지막 황실 가족이 머무르던 낙선재(보물 1764호) 등도 눈여겨봐야 할 곳이다.
창덕궁의 또 다른 멋은 후원에서 찾을 수 있다. 업무에 지친 왕이 말을 타고, 때로는 걸어서 이곳에 와 머리를 식히고 사색에 잠겼을 것이다. 창덕궁 전체 면적의 3분의 2가 후원인데, 해설사와 함께 돌아보려면 1시간 30분이 걸린다.
대중교통 정보
■ 창덕궁 :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에서 도보 5분, 1ㆍ3ㆍ5호선 종로3가역 6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버스] 109번, 151번, 162번, 171번, 172번, 272번, 601번, 7025번 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