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이주민 노동자 A씨가 회사와 체결한 근로계약서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친구의 소개로 일을 하게 된 전자제품 공장에서 쓴 계약서인데 혹시 문제가 없는지 물었습니다.
계약서를 하나씩 검토하며 설명을 드리던 중, 노동시간 부분에 적혀있는 문구를 보고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계약서에는 “제3조 [근로시간] ①소정근로시간은 하루 12시간, 한달 360시간으로 한다. ② 갑(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연장근로, 야근, 특근, 주말근무를 1주 최대 20시간을 한도로 하되 가산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라고 되어 있었다.
한 달에 360시간이라는 엄청난 노동시간에다가 1주 최대 20시간의 연장근로를 계산하면, 최대 440시간을 일해야 한다는 말 그대로 살인적인 노동조건이었다. 게다가, 이 계약서는 문구 자체로 불법,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한국에서는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인간다운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받는다.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는 꼭 자국민(한국국적)이 아니라 모든 외국인(심지어 체류 자격이 없는 이른바 불법체류자도 포함한다)이 포함된다는 것이 우리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이다. 따라서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장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모든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근로기준법은 강행규정으로 법에 정한 기준보다 낮은 기준을 사용자와 노동자가 합의하더라도 이는 무효이고, 무효로 된 부분은 자동적으로 근로기준법의 기준에 따라 정해진다(근로기준법 제15조). 만약 사용자가 근로기준법의 기준을 지키지 않고 노동자에게 일을 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 형사처벌을 받게 함으로써 그 실효성을 보장하고 있다.
■ 근로기준법…1주에 40시간
대표적인 것이 노동시간이다.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의 건강과 문화적 생활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노동능률도 저하시키기 때문에 법률은 1주 및 1일의 노동시간에 대하여 한도를 설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50조에서는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1주에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고, 1일에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최근 개정을 통해 근로시간을 산정함에 있어 작업을 위하여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 시간등도 모두 근로시간에 포함된다. 만약 사용자가 이를 지키지 않는 경우 최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법률에 정한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초과하여 일을 해야 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근로기준법은 그 최대한을 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53조는 당사자 간에 합의를 통해 1주에 최대 12시간을 한도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당사자 사이에 합의를 하더라도 1주 최대 52시간을 초과하여 일을 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근로기준법 제56조에서는 연장근로와 야간근로(오후10시부터 오전6시 사이의 근로) 또는 휴일근로에 대하여는 임금의 50%를 가산하여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근로기준법은 공중의 편의 또는 업무의 특성상 연장근로가 부득이 많이 필요한 사업(운수업, 영화제작업, 의료업, 등)의 경우 예외적으로 근로자대표의 서면합의로 1주 52시간의 최대 한도를 초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근로기준법 제58조), 농업, 임업, 수산업, 감시 단속적 업무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시간의 적용을 제외하고 있어 비판을 받고 있지만, 공장에서 노동하는 A씨의 경우는 예외에 해당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 월급이 최저 임금보다 낮으면
이런 경우에, 소정근로시간을 모두 정산하여 실제 지급받은 임금으로 분할계산을 해보았을 때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최저임금(2014년의 경우 5,210원)보다 낮을 것이 분명했다. 이 역시 최저임금법을 위반하여 사업주는 형사처벌을 받고, 노동자는 차액의 임금을 다시 청구할 수 있다.
정말 가슴 아픈 일은 그 다음에 있었다. 이 계약서가 현행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무효의 계약서이고 만약 사업주가 이러한 내용의 근로를 강제할 경우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을 충분히 설명들은 A씨의 표정은 오히려 상담받기 보다 더 어두워졌다.
본인이 예전에 일했던 공장에서는 계약서도 없이 이보다 더 힘든 조건에서 일했었고, 심지어 폭행(폭언과 욕설은 예사였다)을 당하기도 했다며 이번에 일하게 된 공장은 규모가 커서 근로계약서도 쓰고 회사에서 식사도 제공하는 등 사실 만족스러운 부분이 많았다는 것이다.
상담을 받은 것도 혹시 지난 회사보다 더 좋은 내용이 계약서에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A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과 같은 충격을 받았다. 더 이상 어떤 이야기도 해드릴 수 없었다. 다만, 이런 점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A씨 편에서 함께 싸워드릴테니 꼭 연락을 달라고 명함을 건네 드렸다.
사실, 한국 사람에게도 법은 매우 멀고 어려운 문제다. 이주민들의 법률 상담을 할 때 항상 느끼는 점이지만, 너무나도 불공평하고 억울한 상황에 놓인 이주민들이 자신의 문제를 법률적으로 해결하려고 해도 현실의 장벽이 이를 가로막는 경우가 많다.
특히, 체류자격이 없는 이주민들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이주민 지원센터 친구가 만들어지고, 매주 변호사들이 이주민들의 무료법률상담을 통해 이런 문제를 조금이나마 개선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숙제는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