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한국사회는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순혈주의적인 사고가 지배하여 왔다. 그 동안 다문화 사회로 이행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다수인 것 같다. 이들은 이주외국인이 한국 사람들의 직장을 빼앗고 저임금노동을 강요하는 주범인 것처럼 주장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인식이 공존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상생의 방향으로 전환되지 않는 한 한국사회의 잠재적 갈등요인이 될 것은 분명하다. 공존의 철학은 이주외국인이나 한국 사람들 모두 함께 노력하며 만들어가는 과정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현재 상황에서 어느 누가 이것이 정답이라고 제시할 수도 없다. 서로 만나고 겪어 나가면서 형성해갈 수밖에 없다.
공존은 우리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먼저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사람은 대체로 차이보다는 같은 점이 더 많다. 즉, 모든 사람은 행복하고자 하고 평화롭고자 하고 생존하고자 한다. 외국인과 한국인 사이에는 인간이라는 종을 기준으로 할때는 차이보다는 동일성과 유사성이 압도적으로 크다. 모든 사람은 잘 먹고 잘 살고 싶고, 즐기면서 살고 싶고, 자식 잘 키우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
어린아이를 보면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것을 보면 행복하고 즐겁다. 인의예지와 희로애락 애오욕의 사단(四端), 칠정(七情)을 가지고 사회를 이루고 모여서 사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으로서 공통된 모습이다. 우선적으로 공존의 철학의 전제조건은 비록 살아온 과정과 생활관습, 문화가 다르지만 인간이라는 점에서 우리 모두가 한치의 차이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서로 출신 지역이나 민족이나 국가가 다를지라도 상대방 또한 나와 똑같은 욕구와 감정과 생각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특별한 것이 없다. 그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다. 그도 살고자 하고 나도 살고자 한다. 내가 힘든만큼 그도 힘들다. 내가 설레이고 희망에 부푸는 것처럼 그도 그렇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나와 다르지 않은 존재로 인정하는 것이 공존의 출발인 것이다.
차이를 배제와 차별의 근거로 삼는 것은 공존의 철학과 배치된다. 공존의 철학은 문화와 경험, 생각의 차이를 풍요로움의 원천으로 인정한다. 먹고 살아온 음식이 다르고 일상생활에서의 예절과 규범도 다르다. 일본에서는 잔에 있는 술을 다 마시면 더 이상 마시지 않겠다는 것으로 간주하고 더 이상 술을 채워주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술잔을 다 비우면 다시 잔을 채워준다. 오히려 빈잔을 채워주지 않으면 옆 사람에게 핀잔을 준다. 이와 같이 문화는 한 사람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워 공기와 같은 것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매우 낯설고 이해하기 힘든 것일 수 있다.
그렇지만 서로가 다른 문화와 규범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문화와 관습을 인정하고 배려한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와 질것이다. 과거에는 외국에 가야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을 같은 동네에서 수시로 만나고 사귀게 되니 구태여 외국에 여행을 갈 필요도 없다. 함께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니 오히려 더 깊이 이해하고 만날 수 있다. 차이가 만나 서로 영향을 주며 긍정적으로 결합할 때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가치와 문화가 창조될 수 있다.
차이를 배척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인정하여 주는 만큼 개인이나 사회는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면서 더욱 풍요롭고 성숙하여질 것이다. 이처럼 차이를 상대방에 대한 공격과 배척의 근거로 삼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공존의 철학의 또 다른 핵심 원리가 되는 것이다.
한국사회도 외국인 인구가 많아지면서 독자적인 이주공동체를 형성하고 공동체 내부에서 자족적으로 경제와 생활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고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다만 이주공동체의 문화적인 정체성과 공동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한국사회라는 큰 네트워크 안에서 연결되어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는 방향으로 지향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네트워크적인 관점을 가지지 못하면 고립과 단절이 생기고 새로운 집단적인 사회갈등요소가 되고 장기적으로 그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을 것이다. 서구 사회에서 이주외국인이나 소수민족의 집단적인 저항으로 갈등이 폭발하는 경우가 그 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공존의 철학으로의 인식의 전환은 현재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생존을 위한 전략이 다. 욕심 부리지 않고 낮은 단계부터 지속적으로 상호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공존의 철학을 만들어가기를 기대해본다.
조영관 변호사 <법무법인 덕수 / 이주민지원센터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