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이동한 조선인들이 집단을 이루어 살면서 중국에서 터전을 마련하고, 자치주의 지위까지 획득한 이후, ‘제 2의 디아스포라’ 현상이 나타납니다. 동북 3성의 약 200만에 달하던 조선족 사회에서는 1988년 서울 올림픽과 1992년 한중 수교를 전후하여 많은 이들이 한국행을 택하게 됩니다. 이후 중국 동포를 위한 체류 자격 제도가 정비되면서 현재 대한민국에는 50만 명이 넘는 중국 동포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경을 넘는 ‘초국가적 이주’ 는 단순히 한 사람의 몸만 이주해 오는 것이 아니라 그 몸을 감싸고 있는 공동체의 문화가 앞으로 속할 새 문화와 전면적으로 만나고 부딪히는 역동”의 과정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문화와 문화의 만남이 때로는 신선하고 즐거운 일이 되지만, 많은 경우 오해와 갈등, 반목을 겪게 되는 가슴 아픈 경험이 되기도 합니다.
한국을 ‘할아버지의 나라’, 즉 조국(祖國)으로 알고 왔지만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조선족에게 “너는 한국 사람이냐, 중국 사람이냐?”라고 묻습니다. 이런 질문에는 한 국가의 구성원은 단일민족이라는 전제가 담겨있습니다. 국적은 중국이더라도 ‘조선족’으로서의 정체성과 고유의 문화를 인정받고, 한족과는 구별되는 언어, 문화, 민족적 정체성을 지니고 살아온 많은 조선족들에게 이런 질문은 상처가 됩니다.
이러한 문화적 갈등을 해소하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이주민지원센터 친구는 한국으로 재이주한 조선족에 대한 구술생애사적 심층 인터뷰 및 출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구술생애사’란 한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현재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여러 시간에 걸쳐 이야기하고, 그 자체가 역사적인 증거물, 즉 ‘사료’로써 후대에 남을 수 있도록 하는 연구 방법입니다.
즉 한국에 온 중국 동포가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야기, 한국에 와서 겪은 일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 이를 기록하고 편집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술생애사 작업은 역사적인 거대한 사건들로 이루어진 역사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생생한 이야기들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이자, 책을 읽는 사람들이 한 사람의 생애 및 그 사람이 살아온 사회의 문화를 쉽게 알 수 있도록 해주는 안내이기도 합니다.
중국에서의 생활과 한국에서의 삶, 그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으신 분은 대림동에 있는 이주민지원센터 친구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이야기를 하는 당사자에게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고, 그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지는 않다면, 스스로에게 가만히 얘기해 보세요.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살아갈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