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은 무엇이며, 교육은 어떤 의미인가?
“중국 조선족들은 왜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자신의 뿌리는 조선인이라는 의식을 간직한 채 살고 있는 것일까? 죽을 만큼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왜 배움에 대한 열망만은 계속 타올랐을까? 도대체 민족은 무엇이며, 공부는 무엇이라고 생각해왔을까?”
이러한 의문에 답하고자, 필자는 중국 동북 지역에 근대적인 조선족 학교가 세워지기 시작한 20세기 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험난한 역사적 굴곡 속에서 성립되고 지속되어온 조선족 학교 세 곳의 변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본다. 조선족 산거지역이자 도시인 장춘시에 위치한 관성구조선족소학교, 조선족 집거지역이자 도시인 연길시에 위치한 중앙소학교, 조선족 농촌 집단농장 지역이자 민족향인 오상시에 위치한 민락중심소학교에 대한 연구가 바로 그것이다.
◇ 발로 찾아다니며 엮어낸 조선족 교육의 역사
“우리 연구팀은 일제강점기 만주지역에 거주하셨던 70~80대 조선족 어르신들을 만나 그들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주로 이주하게 된 이유와 과정, 그들 자신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의 경험과 생각, 앞으로의 소망 등을 오순도순 이야기 나눴다. 그때부터 필자는 한국의 근대사와 그로 인한 민족의 대이동, 그리고 한국이라는 지역적 경계를 넘어 이주한 사람들의 고단한 삶 등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삶의 척박함과 희망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의 텃밭이 생겼다. 대부분의 조선족은 목숨이 오가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사람은 반드시 배워야 한다는 생각만은 놓지 않은 채 살아오셨다. 폭탄이 터지고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절박한 상황에서 잠시라도 안정된 시간과 공간이 주어지면 배우고자 했고 가르치려 했다. 힘겨운 인생의 터널을 지나오면서 기억과 생각이 어두워지고 찌그러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들의 마음 한편에는 몇십 리 길을 바람과 추위에 맞서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서 도착한 학교 교정에 대한 추억이 있었다. 조선어로 말하면 매를 맞거나 청소를 해야 하는 무서운 분위기에서도 따듯하고 든든했던 친구들과의 우정, 선생님과의 사랑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살아 있었다. 힘겨웠지만 훈훈했던 지난날의 학창 시절을 환한 한 줄기 빛으로 간직한 채 현재까지도 조선족이라는 자부심, 조선족은 조선의 얼과 글을 알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생의 마지막 여력을 쏟고 계신 분도 있었다.”
◇ 왜 중국 조선족 교육사인가?
조선족 민족교육은 중국 공교육 체제하에서, 중국 공민이자 소수민족인 조선족을 대상으로, 단일한 교육기관 형태를 유지하며 100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중국 조선족 민족교육이 출발국의 개입 없이, 중국 국적의 조선족을 대상으로, 단일한 교육기관을 갖추어 지속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힘은 무엇인가? 중국 조선족의 민족의식이 강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중국 정부가 독특한 소수민족교육정책을 실시하기 때문인가? 조선족의 민족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라면 그처럼 강한 민족의식이 유지된 원인은 무엇이며, 중국 특색의 소수민족교육정책 때문이라면 그러한 정책을 실시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더 나아가 중국 조선족 민족교육은 다른 국가의 이주민 교육과 비교하여 어떠한 역사적 특징이 있으며, 현재 조선족 민족교육은 조선족에게 그리고 한국인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이상을 통해 성찰해본다면, 이른바 민족교육이란 무엇이며 그 미래적 가치는 무엇인가?
◇ 역사적 이해와 성찰이 선행돼야
그간 중국 조선족 교육사에 대한 연구는 주로 조선족 교육제도와 민족교육 운동 분야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교육사는 교육제도나 주요 사건을 포함하여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실제적 교육 세계, 즉 교육을 무엇이라고 생각했으며, 교육을 통해 무엇을 절실하게 기대했는지 그리고 교육과 관련해 어떤 갈등과 문제를 겪었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기도 하다. 이에 필자는 조선족의 교육 경험을 세 학교의 사례를 통해 살펴본 후 그들의 교육 세계를 정리해나간다. 문헌 자료에 대한 충실한 분석, 공들여 얻어낸 구술 자료가 그 신뢰도를 더해준다.
“조선족에게 교육은 개인적으로 그리고 민족적으로 생명과도 같이 소중한 것이었다. 교육을 통해 삶의 위안을 얻었고,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라났다. 조선족의 내면을 흐르는 문화적 본성은 민족교육을 통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졌다. 시대를 관통하여 문화적 본성을 향유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의 핵심에는 교육적 경험이 있었고, 민족교육의 경험은 앞으로도 이를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조선족 민족교육에 대한 역사적 이해와 성찰이 요청된다. 수많은 대책이 공허한 미봉책이 되지 않으려면 100년 이상을 지속해온 조선족 민족교육에 대한 올바른 성찰과 관심이 선행되어야 한다.”
◇ 조선족 학교의 역사와 현황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세 곳의 학교인데, 지역적 특색에 따라 역사적 경험도, 학교 설립 주체 세력도, 그 운영 방식도 달랐다.관성구조선족소학교는 1922년 장춘(長春) 만철 부속지에 설립되었으며, 남만 지역의 조선족 산거지구에 위치한 단일한 조선족 초등교육기관으로 2014년 개교 92주년을 맞이하였다. 장춘은 한족들이 대다수인 대도시인데, 이 지역의 조선족들은 한족과 함께 사는 삶이 일상이었으므로 학교의 성립과 운영에 오히려 다른 지역보다 더 큰 애착을 가지고 동참해왔다. 연길시 중앙소학교는 1915년에 설립된 후 현재까지 그 역사를 이어나가고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최상(最上)의 조선족 소학교로서, 외부로부터 가장 우수한 조선족 학교로 인정받고 있다. 민락조선족향중심소학교는 1939년 흑룡강성 오상시 안가농장에 설립된 민락 지역 최고(最古)의 조선족소학교로서, 같은 고향의 조선족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긴밀한 연대의식 속에서 학교를 운영하였다. 그러나 최근 조선족 농촌 마을이 붕괴되면서 꾸준히 유지되던 학생 수가 급속하게 줄어들어 결국 2011년 폐쇄되고 말았다.
◇ 조선족 학교의 운영방식
관성구조선족소학교는 만철에 의해 운영되면서 만주국 시기에도 일본식 학제에 따라 운영되었고, 연길시 중앙소학교는 조선총독부 학제와 만주국 학제에 따라 운영되었으며, 오상시 민락조선족향중심소학교는 조선인 농업회사가 운영하는 농장의 교육계에 의해서 운영되다가 만주국 학제에 따라 농업 중심 초급학교로 운영되었다. 1945년 이후 이들 학교의 역사는 중국 공산당 정부의 민족교육 정책과 궤를 같이했다.
◇ 조선족 학교의 미래
교육은 국가를 위한 그 무엇이 아니라 바로 인간을 위한 것이라고 보는 필자는 조선족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민족문화는 민족적 씨줄과 초민족적 날줄이 함께 엮어내는 옷감이다. 민족성이 초민족적 사유에 의해 끊임없이 응전과 자기 교정의 과정을 겪을 때만이 역사의 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조선족의 문화는 광복 전 조선의 문화도 아니고, 현재 한국이나 북한의 문화와도 다르다. 정착지인 한족 문화와도 근본적으로 차이가 크다. 조선족의 문화는 단순한 전통문화의 지속도 아니고 정착지 문화에로의 동화도 아니다. 조선족 문화는 타민족 문화와 교류하면서 역사적 환경에 의해 형성된 그들만의 문화이다. 조선족 사회의 생활양식은 중국 조선족의 이주와 적응이라는 삶의 역사가 반영된 결과이다. 출발지 문화를 바탕으로 이민족과 접촉하면서 정치적 환경에 따라 조화롭게 공존하기 위한 적응 전략으로서 축적된 생존의 지혜가 반영된 문화이다. 소수민족 문화를 지지하는 중국 정부의 역사․사회적 통치 전략을 활용하면서 나름의 조선족 문화를 구성해온 것이다. 따라서 조선족 학교의 미래는 조선족이라는 민족적 정체성과 중국인이라는 국가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국내외적으로 활약할 수 있는 능력과 인성을 지닌 인재로 키울 수 있는 교육 체제 구축에 달려 있다.”
■ 지은이 정미량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동안 일제강점기 재일조선유학생사, 중국 조선족 교육사, 한국 다문화 교육 문제 등에 관심을 두고 연구해왔다. 주요 저서로는 『1920년대 재일조선유학생의 문화운동: 개인과 민족, 그 융합과 분열의 경계』(2012), 『한국의 다문화주의: 가족, 교육 그리고 정책』(2011, 공저) 등이 있다. 도서출판 살림터 신국판 / 320쪽 / 값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