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와 같이 위명여권을 사용하여 명의를 도용한 자의 처벌 및 이에 대한 구제의 문제에 있어서는 많은 논의가 있었고 이를 토대로 한 정책까지 시행되어 왔으나, 이와 관련하여 명의를 도용당한 피모용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선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피모용자에 대한 불이익한 처분은 많은 우려를 낳게 합니다.
최근 제가 상담을 한 몇몇 사례에서는, 다른 사람이 본인 모르게 본인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사용하여 위명 여권을 만들어 사용하다 적발되었고, 본인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체류기간의 만기가 도래하여 체류기간을 연장하려고 하자,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이와 같은 명의도용 문제를 들어 연장을 불허하였습니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본인이 일시적인 사정으로 잠시 출국하였다가 다시 대한민국에 입국하려고 하였는데, 그 사이 다른 사람이 본인의 위명여권을 사용하다가 발각되었다는 사실을 들어 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본인의 입국을 거부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이 본인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이용하여 위명여권을 만들어 사용하는데 있어, 본인이 경제적 이익을 제공받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보를 제공하여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본인 명의의 위명여권을 사용하도록 하였다면, 이러한 본인에 대해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체류기간연장을 불허하거나 입국을 금지하는 등의 처분을 하는 것은 일응 수긍할 수 있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본인의 명의를 도용한 위명여권 사용자와 명의를 도용당한 피모용자인 본인 사이의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단지 본인 명의의 위명여권이 사용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본인에 대하여 불이익한 처분을 하는 것은 결코 타당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다른 사람이 본인 명의로 된 여권을 사용한 것은 적어도 본인 스스로가 자신의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에 근거하여 이러한 처분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 오늘날 사회에서 개인정보의 유출은 매우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본인의 정보제공 없이도 타인의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더욱이 중국동포들의 경우 출입국이나 체류기간 연장 신청을 위해 여행사나 행정사 등에 자신의 여권이나 호구부 등을 맡기는 일이 많고, 이 과정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는 위험은 더욱 클 수밖에 없음에도,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위명여권 사용에 있어 피모용자를 무조건 위명여권 사용자의 공범으로 보는 것은 부당합니다.
행정청이 어떠한 불이익한 처분을 함에 있어 사전에 행정청 스스로가 처분의 근거가 된 사유에 부합하는 객관적인 증거나 자료를 확보한 이후에야 이러한 처분을 발해야 한다는 것은 법치주의나 적법절차라는 측면에서 볼 때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행정청이 객관적인 증거의 확보 없이 단순한 의심만을 가지고 불이익한 처분을 발한다거나, 오히려 당사자에게 스스로 자신이 무관할 것을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행정청의 입증책임을 사인(私人)인 상대방에 전가하는 것으로써, 결코 타당하지 않다 할 것입니다.